대학 졸업하고 운 좋게 작은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을 때 일이야.
입사 1주 차, 아직 어버버 거리며 직장인의 삶에 적응 중이던 어느 날,
친구가 갑자기 소개팅을 제안했어.
“야,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. 너 같은 조용한 스타일 좋아한대.”
사실 나는 낯가림 심해서 소개팅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…
이상하게 그날은 용기 나서 "오케이" 함.
그리고 주말, 소개팅 당일.
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...
세상에. 들어오는 사람이 완전 내 스타일.
단정한 셔츠에 부드러운 말투, 약간 부끄러워하는 미소까지.
이건 될 것 같았다.
둘 다 말수가 적었지만 은근 잘 통했고,
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어.
근데 대화 중 내가 무심코 한 마디:
“저 회사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… 상사한테 찍히지만 않으면 다행이에요 ㅋㅋ”
그러자 소개팅 남이 웃으면서 말하더라.
“아, 저도 회사에선 팀장이라 그런 얘기 들으면 조심하게 되네요.”
그 말을 듣고 ‘어, 팀장인데 좀 어린가?’ 싶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.
좋은 분위기 속에 연락도 이어갔고,
서로 “또 봐요~” 하면서 마무리.
그리고 월요일.
출근해서 회의실에 들어가는데…
신입 환영회 겸 기획 회의에 새로운 팀장이 오신다는 거야.
다들 웅성웅성.
문이 열리고…
소개팅 남이 들어왔다.
바로 우리 팀 신임 팀장님이었던 것.
눈 마주쳤는데, 서로 눈동자가 "망했다" 외치고 있었음.
거긴 “상사한테 찍히지만 않으면 돼요 ㅎㅎ”라고 말한 그 신입이 있고,
여긴 “그 상사”였으니까.
다행히 둘 다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안 했고,
그 후에 조용히 연락 종료.
지금도 그 팀장님이 회의 중
“음… 이건 신입 OOO씨 생각은 어때요?”라고 물으면
내 머릿속엔 항상 그 말이 맴돔.
‘상사한테 찍히지만 않으면 돼요 ㅎㅎ’